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상훈(좌완투수)/선수 경력 (문단 편집) === 2004 시즌 === [[파일:external/www.sksports.net/Large_2004052323335241614_7094.jpg]] 2004년 1월, 스프링캠프 기타 파동으로 인해 [[이순철]] 감독과의 트러블을 빚었고 오승준과 양현석을 상대로 [[SK 와이번스]]에 트레이드되었다.[* 견해적 차이겠지만 홈구장 더그아웃에 기타를 치는 건 좋지 않다는 건 물론 동료나 상대팀 선수들에게 피해를 입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이순철]] 전 감독의 생각이었고, 여담이지만 당시 삼성에서도 투수진 보강을 위해 이상훈의 트레이드를 제안했는데, 삼성이 내밀었던 카드는 2년차 좌완 투수던 '''[[권혁]]'''이었다. 마침 새로 부임한 선동열 수석코치가 이상훈과 고려대 선후배 출신이기도 하고 일본 주니치에서 같이 뛰었던 적도 있어서 이상훈을 삼성으로 데려오려 했다고 한다. 하지만 LG 측에서 추가로 현금을 요구하고 김응용 당시 삼성 감독이 막판에 반대해서 무산되었다고. 그외에도 롯데 역시 뒷문 보강을 위해 이상훈의 트레이드를 고려했다고 하나, 양상문이 롯데 감독으로 부임했고, LG 투수코치 출신이라 이상훈의 몸 상태를 잘 알고 있었던 데다가 적지 않은 나이, 부상 경력, 높은 몸값 등을 고려하여 그냥 논의에 그쳤다고 한다.][* 이후에 밝히길, 고양 원더스가 해체될 무렵 이순철과 만나 트레이드를 하게 된 경위를 듣고 오해를 풀었다고 한다. 다만 대놓고 나쁘게 말하는 게 싫었을 수도 있다.] 초반에는 괜찮은 공을 던졌으나 얼마 안 가서 급격한 부진에 빠졌고, 결국 [[구로다 히로키|'''친정 팀 LG를 상대로 공을 던질 수 없다''']]며[* SK에서의 데뷔전은 개막전인 문학 LG전이었는데 이 경기에서는 세이브를 기록했다.] 6억이나 되는 연봉[* 10년 전 물가로 비교하면 실질적으로 더 많은 액수다. 거기에 이 연봉은 공을 한 번도 안 던져도 자동으로 받는 금액이었다.]을 포기하고 과감히 은퇴.[* [[조범현]] 감독이 직접 '''상훈아, 차라리 나랑 같이 그만두자!'''라고 말했을 만큼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여졌다.] 이 때문에 [[조범현]]이 구상했던 [[조웅천]]과의 더블 스토퍼 체제가 붕괴되면서 이 해 [[SK 와이번스]]는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다.[* 물론 이 해 SK가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또 다른 원인은 시즌 중반 [[틸슨 브리또]]가 상대 덕아웃을 습격한 사건으로 20경기 출전 정지를 당한 것도 있었다.] 훗날 이상훈은 LG와 상대하게 되면 포기할 상태까지 왔다고... 즉 예전 모습만큼 위력이 나오지 않아서 공을 놓았다고 한다. 다만, 이상훈의 기량이 전년도인 2003년부터 완연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시 나이도 33세로 선수로써는 적지 않은 나이었고, 고질병인 손가락 혈행장애와 어깨 탈구증세가 자주 일어나고 있었다.] 이상훈 & [[조웅천]] 더블 스토퍼 체제의 붕괴는 예정된 수순이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현역에서 은퇴할 때 은퇴사유로 친정 팀 LG를 상대로 공을 던질 수 없다는 이유를 들기도 했으나, SK 데뷔 경기인 2004 시즌 [[LG 트윈스|LG]]와의 개막전에서 마무리로 등판해 세이브를 거두기도 했으며, 다소 의외지만 여러차례 LG 타선을 상대로 틀어막으며 포효를 한 적도 있다.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lgtwins_new&no=9699449&exception_mode=recommend&page=1|LG를 상대로는 공을 던질수 없는 분.gif]]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